백림의 길에서, 2편 1장 어떤 달리기는 분憤에 대한 도전

‘호수의 땅’ 수오미에서 백림에 발을 딛는 여정만큼이나 평화로운 순간이 있었을까. 사실 골인 지점의 쾌락보다 덜하겠지만 ‘포, 차 떼’고 생각하면 사실상 3박 5일 일정 중 심신의 평화가 유일한 때였다.

9월의 항공료를 7월에 냈다. 뮌헨으로 입국해 백림을 거쳐 헝가리 부다페스트시를 가치는 일정은 동유럽의 낭만을 개척하는 쾌미를 얻고자 하는 작은 욕심이었다. 그러나 바쁜 일상을 탈출하고 얻으려 했던 그것은, 이미 휴가 결제까지 끝난 마당에 중간에 소속 부서의 변경으로 차질을 빚게 됐다.

사실 변경된 부서의 부장은 전에도 내가 모신 바 있는 어른이기에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 어릴 때는”이나 “기자가 되서 말이야”같은 말을 뱉는 분도 아닌 탓에 소위 ‘쿨하’게 휴가를 떠나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사를 비롯해, 이어지는 명절까지 생각하면 1달 동안 5~10일 정도 밖에 근무하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를 ‘완전히 새로’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 못내 부담스러웠고, 팀의 최선임으로 옮겨가는 자리인 만큼 무게감도 나를 누르고 있는 까닭에 일정은 반토막으로 축소했던 것이다.

수수료로 20여만원, 숙소를 취소하며 다시 5만원, 독일 국내선은 취소조차 안 돼서 수 만 원이 말 그대로 ‘공중에 붕 떴’고 다시 비행편을 알아봐야 할지 가까운 곳으로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물가가 저렴한 인근 국가로 여행을 간다면 시차도 없을 뿐더러 풍요롭게 먹고 쓸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반짝 닷새의 독일행은 결정 직전까지 매분 매초 계속됐다.

물론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몸상태가 훨씬 큰 고려대상이었다. 마지막 마라톤을 뛴 뒤 10kg이 넘게 살이 찐 상태에, 멈추지 않았지만 15km 이상 중장거리를 뛴 것도 대회를 제외하고는 추억의 안갯속에 있던 터다. 사실상 연습없는 초심자의 몸상태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툭 튀어나온 배와 가슴, 햄처럼 둥그렇게 퍼진 다리, 근육 없는 몸. 때때로 6to9(cf. 9to6)로 일을 하는 삶 속 달리기는 분憤에 대한 도전일 뿐 어떤 회복도 위로도 기쁨도 감동도 되지 못했기에 도로에 몸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이 없었다. 기회도 없었고, ‘앞으로’는 더욱더 없었기에 나는 움츠렸던 과감을 주저없이 여기에 던졌다.

백림의 길에서, 1편 2장 길은 때로 도전이 됐다

답답할 때면 달리기를 했다. 2012년부터 뛰었다. 온천천을 뛰었다. 다리 위로는 1호선이 달렸다. 대개 내가 닿는 곳은 동래역,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광안리까지도 갔다. 회가 올라간 접시나 맥주 몇 캔을 들고 모래를 밟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도 크게 소리를 지르고 49번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그렇게 가던 복귀는 어느 순간 버스 탑승용 후불교통카드가 필요 없을 지경이 됐다. 울분에서 시작된 뜀박질이 숨과 다리로 내려온 것.

굳이 빠를 필요도 없었고, 멀리 갈 필요 없었던 길은 때로 도전이 됐다. 대회라는 것을 알게 됐던 것이다. 거기에는 운동 용품을 만들어 파는 아디다스, 나이키, 뉴발란스 등 회사의 마케팅 행위가 주효했다. 트레이닝 런은 실은 트레이닝과 함께 신제품을 선보이는 온갖 종류의 대화가 들어 있었다. 물론 그게 싫은 것은, 당시에도 지금도 결코 아니다. 이건 자유로운 의지 아래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교환행위니까. 그러나 때로 대회와 연계한 신기술 채택 제품의 출시는 왜 그렇게도 기가 막혔던 것인지. 시즌별 밀어대는 물건의 이야기, 소위 ‘스토리텔링’은 인제 와서 생각해도 기가 막힌 수준의 정교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달리기를 이어갔던 것은 ‘가장 정직한 운동’이라는 오래된 표어기 때문이었다. 모든 말과 상황은 수시로 바뀐다. ‘덜 정직한 운동’이 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느끼는 수준을 넓게 잡자면 달리기는 ‘가장 평화로운 운동’이었다. 사실, 그래. 당첨부터 9월 중순까지 150여일 동안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