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이라는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서 나무 책장을 무상으로 얻어왔다. 이사를 하신다고, 몇천 원에 팔아도 될 것을 급히 내놓은 분께 책장 두 개를 얻어왔다. 그동안 베란다에 대충 꽂혀 있던 책 중 몇 권이 자리를 얻어 작은 방으로 들어왔다. 나눠 주신 분께는 조미김 몇 개를 선물로 드렸다.
수레에 이것을 싣고 집에 들어서니, 수많은 중고거래가 보였다. 거울, 옷장, 의자, 소파, TV받침, TV, 에어컨, 오븐, 에어프라이어, 컴퓨터, 카메라, 캠코더, 삼각대, 생각해보니 책상을 옮긴 차도 책장이 놓인 집도 중고다. 넣고 보니 책도 중고가 깨나 있다. 절판돼 구하기 어려운 책부터 중고로 사는 게 훨씬 낫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도 있다.
버려질 상황이거나 의미를 다 한 것을 새로이 쓰는 것은 제품의 전 생애 측면에서 충분히 환경적이다. 그렇지만 과한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언제든 이사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짐을 늘리지 않으려고 하지만 사거나 넣고 보니 저렴하게 들였다는 핑계로 과다한 게 아닌지 말이다.
이런 생각으로 책을 채워 넣으며 짧은 감상에 젖었다. 대체로 책이나 영화, 장소로 사람을 기억하는 탓에 어떤 책을 볼 때 본 적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또 잊었던 순간이 기억났다.
대개 좋은 기억이지만 지금에 방점을 둔 나에게는 저면 아래 두었던 광경이다. 삶의 기뻤던 순간은 명징하게 현상돼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다. 나는 미화를 궁색하게 여기어 좋지 못한 당신 얼굴을 오래 붙잡지 않고 따뜻했던 입추의 숨결을 담아두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의 사과를 내 마음에 욱여 넣지 못하고, 어떤 불쾌함이나 거절을 세게 쥐지 않으면서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그래서 책장을 넘기지는 않았다. 하나씩 솟아나게 할 수는 없으니까.
어쨌거나 감사한 삶이다. 무료로 책장을 나누어준 어떤 학부모도, 삶의 일부를 저렴하게 나눠준 판매자들도, 감상을 나누어진 이들도, 또 이런 온도를 느낄 수 있게 해준 부모도. 좋은 이야기를 아직 빈 곳에, 일인칭 단수로 꾹꾹 눌러 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