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주 혼인 잔치 참석이 잦았다. 손뼉을 치다 뒤돌아 나올 때는 흰 꽃을 몇 송이 쥐고 왔다. 차를 몰거나 지하철이 덜컹거릴 때 옆에 별을 다니 눈길을 굳이 주지 않아도 빛이 났다. 그게 좋아서, 혼자서 분위기를 피울 수 있는 꼴이 좋아 아침이면 물을 갈았다.
그러면서도 문득 꽃의 잘린 발을 만지면 미끄러워서 두렵다. 물 때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헤엄에 생긴 물갈퀴 아닐까 생각해봤다. 유영하는, 한철이나 몇 주를 밝히는 별처럼 삶은 너무 짧은 게 아닐까. 삶이 처연해 거울을 보지 못한다는 어떤 이의 말은 이가 돼 가끔 볼을 씹거나 이를 악물게 했다.
가끔의 주제는 두려움이었다. 우선 가끔이라고 변명해 두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몇 걸음도 나가기 어려울 테니까. 차라리 머리를 깎거나 봉쇄된 곳으로 갈까, 하다 눈을 깜빡거리니 벌써 여기가 불붙은 연옥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니 흰 꽃잎이 검붉게 물들었다. 때때로 반복되는 죽음이었다. 누구도 영영 살 수 없기에 생긴 두려움은 기도 아닌 불신으로 내게 왔으나 태어나면서 변명하게 된 두려움과 함께는 아니었다.
일주일이면 끝나는 삶. 반복 아니면 두려움. 낙화의 짧은 시간은 탄 내로 바뀌거나 승무가 됐다. 한恨이 하늘을 찔렀고, 화장장에서도 가격표가 붙는 세상에서는 무엇도 비쌌다. 시간이 가장 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