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행복할 DSR

오래 묵은 빚은 얼마까지 상환할 수 있을까. 이따금 이뤄지지 않을 상상을 했다. 어깨 진 무게는 스스로 멜 수 있을 만큼 재는 게 중요했다. 양쪽 어깨와 심장도 마찬가지이었다. 균형 없는 시간을 생각할 수 없었다. 여린 마음에도 그쯤 깨닫기 시작했을 때 눈물겹게도 어른이 됐다는 걸 실감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조금의 고통을 남겨두었다. 역치에 닿지 않는 틈은 당신을 위한 것이었다. 공동의 틈이 있어야 우리는 뒤뚱거릴 수 있으니까.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상의 우연은 비쌌다. 오래된 밥벌이에 대한 이야기다.

일용직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돈이 됐고 나는 입을 물 위에 띄울 지경이었다. 삼각김밥이 제 체형은 그대로 두고도 700원에서 1200원으로 반 넘게 자라는 동안, 내 기준이 그 정도에 머무른 것은 고유의 삶이 준 기준 무게라서, 내 시급은 수 배가 됐음에도 따라갈 수 없는 게 있었다. 빈 틈 같은 게 너무 많았다. 당신은 씀消費으로 존재됨을 원했고 나는 묶으며 방어선을 만들었다. 내 사랑은 조각이되 결코 나아가질 못해서, 아직 스칼라Scalar 밖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본능적인 압박이었다.

이직은 대개 연봉 협상을 수반하고, 그건 보통 삼각김밥 혹은 캔커피 몇 개씩 더 살 수 있는 환경의 변화를 뜻했다. 그러나 겁은 흔하게 왔다. 사랑을 한 줌씩 늘려가는 건 평범했지만 순간 공空이 될 경우가 있었으니까. 나는 때때로 눈물의 습도와 웃음의 건조함을 피부로 느꼈다. 쉽게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행복하지 않아 되었다, 삶이. 나는 자잘하게 슬픈 편이 좋았고 가끔씩 감정선으로 부리는 사치쯤이면 죽을 수 있었다.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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