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라도 말하라면서요. 이뤄질 수 있는 것 없지 않나요. 모집단에서 표본집단을 뽑는다는 게, 꽃밭이나 어장에서 선별된 것을 잘라내거나 뽑는다는 것 아니잖아요. 그게 잡초로 가득한 화원인지, 시간마저 느려질 뻔한 적도 혹은 심해의 구석진 자리일지 알 바 있나요. 제가 사랑을 해야 한다니요. 뒤집힌 인과 아닌가요. 제 것을 내놓으라니요.
때나 수를 맞출 수 있나요. 저는 일을 잘하고 싶지만, 가족과 일을 저울에 굳이 두자면 퇴사나 절필도 요원하지 않지요. 성관계는 살아 있을 때 할 수 있을 만큼은, 대화도 그만큼, 입맞춤은 그의 제곱쯤, 산책은 그의 절반쯤, 다툼은 그의 제곱근 정도. 아닌 거 알아요. 그대로만 되지 않는 것도요. 그렇지만, 말씀하여 보라면서요.
저녁엔 쳇 베이커나 아이코, 윤상, 모브닝, 혁오 또 브르노 마스를 들어요, 구글음악으로요. 자연스럽게 다른 재즈나 피아니스트 연주, 인디음악로 넘어가지요. 매일 틀면 똑같은 음율이 흐르지 않지요, 조금씩의 변주. 우리 삶도 그렇잖아요. 같은 직장에서 무엇을 더 크게 바라는가, 그 말씀이죠. 그래서는 결혼할 수 있겠냐는, 그 말씀이지요. 모르겠어요. 서른살을 넘어서는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겨우 이해가 되지만, 아가를 만나거나 반려자를 만나기에 점점 늦어지는 시간이 아니냐 그 말씀이지요. 모르겠어요.
기피하지 아니하는 키나 직업, 체형이나 외모, 원천징수, 가족관계, 질환여부를 말하라고요. 중요하겠죠. 틀린 말씀이라는 게 아녜요. 그렇게 듣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제가 모두 벗고 털어놓아야 하는 것은 왜 말씀을 미루시나요. 탈모 가족력이나 아버지의 직업, 유전적 질환, 성적 생산능력은 부차적인 건가요.
선생님의 시간의 가치를 알아요. 그래서 전화는 이쯤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럴 자신이 없어요. 그럴 마음이 있지만, 어떤 관계에서 제가 하였던 말이지만, 제가 충분히 좋은 사람일지 여전히 우려 됩니다. 아시잖아요 이쯤이면, 재미도 없고 따분한 사람인 걸요. 귀찮고 발랄하지 못해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저도 확신 못하는 걸요.
그래도, 그래도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저에게는 ‘그 시장의 필살기’가 있어요. 연봉을 말씀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