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을 사랑했을 때 나는 큰 상처를 받았다. 그가 원한 것은 내가 아녔다. 아주 조그만 조각, 그것만 바랐다.
글로 밥을 지어 먹는 이가 되고 싶어서, 글자와 문자의 무덤부터 바다까지 떠돌던 시절 나는 많이도 편지를 썼다. 노래를 불러서 녹음해 들려주기도 했고, 어떤 이야기라도 참새 지저귀듯이 들려줬다. 그가 원하면 그를 따라갔고 그의 일도 얼마간 내 손때를 묻혔다.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엑셀로 이것저것 꾸미는 것도 힘을 보탰다. 한창 젊은 시절이라 그랬던가, 그래도 몇 달씩 그렇게 지냈다.
사람인지라 힘에 부칠 때가 있었다. 지금의 고요를 찾게 되기까지 많은 역경과 고난을 지나쳤고, 느린 속도로 뛸 때도 있었다. 그걸 견디지 못했는지 M은 내게 어떤 위로도 없이 다른 이를 방에 들였다.
아무리 뒤져봐도 잘못된 것은 없었는데, 내 방에는 장송곡이 울려 퍼졌고 그의 방은 또 다른 질투의 장이 됐다.
P는 내게 자주 거짓말을 했다. 밥 먹듯이 했다. 얼굴을 볼 때면 하루에 3번은 했다는 이야기다. 욕도 심했다. 진영논리에 빠졌던 그는 흑백의 그림자를 오가면서 여럿을 박쥐 아니면 한심한 사람으로 몰아 붙였다. 당기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였다.
불안해서 그랬을까. 뻐꾸기 새끼처럼 그는 타깃을 계속 바꿔가면서 울타리를 세웠다. 알면서도 굳이 불편에 반응하지 않았던, 물론 부당한 것과 차별을 두기 위한 표현이다, 나는 자주 그 대상이 됐고 가슴 속에 응어리도 생겼으나 굳이 암이 되게 두지 않았다.
A는 아빠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그의 부친은 어느 기업 고위 간부였다. 인사 이동을 할 때면 인터넷 지면을 장식할 만한. 그가 이뤄낸 것도, 그의 아빠의 월급이나 기사 딸린 법인 차량도 내 관심사와 참 멀었지만 그는 그 이야기를 시시때때로 늘어놨다.
내가 관심있던 것은 단순했다.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그가, 좋아하는 차가운 라떼를 마음껏 편히 먹을 수 있도록 그런 우유가 제공되는 커피 전문점을 찾는 그렇고 그런.
편을 만들어야 하나, 팀을 꾸려야 하나. 아니면 우리를 만들어야 할까. 고민만 깊이 파다가 아주 작은 웅덩이만 남겼다. 이것은 잘한 일일까. 거울을 보다가 고민이 쏟아졌다.
이런 이야기들은 일방적 주장이나 망상, 기억의 조작은 아니다. 2001년부터 오늘까지 빼곡히 쌓인 사진과 문서, 각종 파일을 뒤지다가 다시 떠올라버린 수년 전 사태의 편린이다.
나는 이것들을 자주 다시 봤다, 속칭 ‘정주행’. 기억은 지워지고 덧입혀지며 또 재구성된다고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싶었다. 상처부터 환희까지, 물론 내가 준 것들까지 모두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