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서 열이 올라온다. 시릴 틈 없다. 뼈마디마다, 감을 때마다 눈앞에 슬금슬금 보이는 눈썹까지 행복으로 찬다. 좋은 기사를 읽을 때,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된다.
그것은 때로 슬프거나 분하고, 또 복잡한 심경이 일렁이는 문장과 단락, 글의 주제와 별개로 나에게 온다. 싫고 역겨운 주제마저 그러하여서 기자의 진심과 끈질김, 답답한 마음을 부여잡고, 끊긴 전화에 서운해하지 않고 다시 재통화를 누르는 뻔뻔함에서 나온 한 문장, 온갖 고초를 겪고 나왔지만 포털 업체의 뉴스면 주요 배치에서 빗겨나 조회수는 겨우 열 몇 개에 지나지 않는 굴욕 속에서도 피어나더라. 물론 이미 소위 ‘업자’가 된 지 한참인 내가 ‘업에서 떨어진 완벽한 일반 독자’일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이런 기사를 주워 읽고 갈무리하는 것은 내 빈 시각 조그만 즐거움이 됐다.
정보 통신망에서 잘 읽히는 글은, 잘 읽히는 길이는, 잘 읽히는 제목과 그에 필요한 사진은 분명 있을 것이다. 온전하게 깔리는 것 자체는 불가능에 가깝지 않고, 불가능하다. 편집된 체계 속 놓쳐버린 부분이 있다면 그 글을 찾는 것 또한 능력, 그 맥락을 채워 넣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은, 요새 들어 괜한 자괴감과 우울함에 휩싸인 내게 좋은 자극제가 되고 있다.
오늘도 좋은 글을 찾고 있다. “언론사도 회사다. 어떤 도리도 하지 않을 수는 없잖니”라며 아쉬워하던 어떤 선배를 따르지 않기로 한다. 넘쳐나는 언론사와 언론인 양 포장한 광고사, 속보 경쟁하지 않는 어떤 언론(굳이 언론사와 언론을 분리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나 생존을 고민하면서도 특기 없이 같은 파도를 기다리고 있는 미디어 사이에서 여전히 나는 춤을 추며 이삭을 줍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