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 물을 갈면서

요 몇 주 혼인 잔치 참석이 잦았다. 손뼉을 치다 뒤돌아 나올 때는 흰 꽃을 몇 송이 쥐고 왔다. 차를 몰거나 지하철이 덜컹거릴 때 옆에 별을 다니 눈길을 굳이 주지 않아도 빛이 났다. 그게 좋아서, 혼자서 분위기를 피울 수 있는 꼴이 좋아 아침이면 물을 갈았다.

그러면서도 문득 꽃의 잘린 발을 만지면 미끄러워서 두렵다. 물 때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헤엄에 생긴 물갈퀴 아닐까 생각해봤다. 유영하는, 한철이나 몇 주를 밝히는 별처럼 삶은 너무 짧은 게 아닐까. 삶이 처연해 거울을 보지 못한다는 어떤 이의 말은 이가 돼 가끔 볼을 씹거나 이를 악물게 했다.

가끔의 주제는 두려움이었다. 우선 가끔이라고 변명해 두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몇 걸음도 나가기 어려울 테니까. 차라리 머리를 깎거나 봉쇄된 곳으로 갈까, 하다 눈을 깜빡거리니 벌써 여기가 불붙은 연옥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니 흰 꽃잎이 검붉게 물들었다. 때때로 반복되는 죽음이었다. 누구도 영영 살 수 없기에 생긴 두려움은 기도 아닌 불신으로 내게 왔으나 태어나면서 변명하게 된 두려움과 함께는 아니었다.

일주일이면 끝나는 삶. 반복 아니면 두려움. 낙화의 짧은 시간은 탄 내로 바뀌거나 승무가 됐다. 한恨이 하늘을 찔렀고, 화장장에서도 가격표가 붙는 세상에서는 무엇도 비쌌다. 시간이 가장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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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행복할 DSR

오래 묵은 빚은 얼마까지 상환할 수 있을까. 이따금 이뤄지지 않을 상상을 했다. 어깨 진 무게는 스스로 멜 수 있을 만큼 재는 게 중요했다. 양쪽 어깨와 심장도 마찬가지이었다. 균형 없는 시간을 생각할 수 없었다. 여린 마음에도 그쯤 깨닫기 시작했을 때 눈물겹게도 어른이 됐다는 걸 실감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조금의 고통을 남겨두었다. 역치에 닿지 않는 틈은 당신을 위한 것이었다. 공동의 틈이 있어야 우리는 뒤뚱거릴 수 있으니까.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상의 우연은 비쌌다. 오래된 밥벌이에 대한 이야기다.

일용직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돈이 됐고 나는 입을 물 위에 띄울 지경이었다. 삼각김밥이 제 체형은 그대로 두고도 700원에서 1200원으로 반 넘게 자라는 동안, 내 기준이 그 정도에 머무른 것은 고유의 삶이 준 기준 무게라서, 내 시급은 수 배가 됐음에도 따라갈 수 없는 게 있었다. 빈 틈 같은 게 너무 많았다. 당신은 씀消費으로 존재됨을 원했고 나는 묶으며 방어선을 만들었다. 내 사랑은 조각이되 결코 나아가질 못해서, 아직 스칼라Scalar 밖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본능적인 압박이었다.

이직은 대개 연봉 협상을 수반하고, 그건 보통 삼각김밥 혹은 캔커피 몇 개씩 더 살 수 있는 환경의 변화를 뜻했다. 그러나 겁은 흔하게 왔다. 사랑을 한 줌씩 늘려가는 건 평범했지만 순간 공空이 될 경우가 있었으니까. 나는 때때로 눈물의 습도와 웃음의 건조함을 피부로 느꼈다. 쉽게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행복하지 않아 되었다, 삶이. 나는 자잘하게 슬픈 편이 좋았고 가끔씩 감정선으로 부리는 사치쯤이면 죽을 수 있었다.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