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할 때는 왜 반대편 거울을 봐야 할까. 세 개 거울을 훑는 내게 장이 말했다. 어느 쪽부터 불쑥 무엇이 들어올지 모르잖아, 무엇이라도. 내 편이 얼마큼 불쑥 튀어나와 있는지도. 우리 삶에 그 무엇이라도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게 있을까 싶다가, 다시 돌이켜보면 확인하더라도 그게 확인됐는지 어떻게 확정할 수 있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토록 공언公言은 사소해져서, 우리는 비뚤어진 이성관과 그릇된 육아관을 의심했다. 가끔 살아남았고 자주 위치에 부응했으나 결국 틀리지 않았는지 되뇌며 울어버리는, 시간은 실로 무서웠다. 통장에 쌓이는 것은 이자가 아니라 불안감의 무게였다.
장은 이제 우憂가 없냐 자주 안부를 줬다. 따뜻했으나 고맙지 않았다. 우리는 만들어졌고, 그것은 부서진다는 클리셰Cliché였다. 갈수록 삶은 가벼워질까. 나는 겁을 뱃속에 욱여넣고 다시 거울 세 개를 쓸어 보았다. 더이상 거기엔 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하찮은 공간들이 여백을 메웠다.
내內에 열이 올르자 바람같은 게 소리를 지르며 지나갔다. 시야 끝에 시기를 잘못 읽은 목련이, 하얗게 질린 메그놀리아가 부들부들 떨면서 빠르게 멀어져갔다. 목련은 얼었다. 내가 보지 않았어도 그랬을 것이다.